엘리의 정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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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 시험 중입니다.

정원지기 엘리 2025. 5. 15. 16:44

꿈에서

나는 커다란 배 위에 있었어요.

 

망망대해를 가르는 배.

어디서 출발했는지도,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

그 배에 머물고 있던 나는 

왠지 모르게 설레어했어요.

 

그 배에서 내리려면

시험을 통과해야 했어요.

‘여권’을 받아야만

다음 세계로 건너갈 수 있다는

그런 설정이었어요.

 

나는 한 단어를 계속 외우고 있었어요.

익숙하지 않은 철자.

<pastshers> 같은, 어딘가 이상한 단어.

 

꿈속에서, 그건 '과거'를 뜻했어요.

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

그 단어가 외워지지 않았어요.

 

노트에 줄을 긋고, 다시 쓰고,

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외웠지만

자꾸만 틀렸어요.

 

배에서는 파티가 열렸고,

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굽고 있었어요.

그 속엔

오래전 인연이었던 

전 남자친구도 있었어요.

 

그는 웃으며 말했어요.

"같이 고기 좀 먹어줄래.?"

 

나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지만

사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.

 

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어요.

깨는 순간까지도

그 단어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어요.

 

그리고 문득,

이런 생각이 들었어요.

 

어쩌면 지금의 나는

인생이라는 한 구간의 배 위에 올라서 있고,

그 배에서 내리기 위해선,

‘과거’라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?

 

아직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,

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소리들,

끝내 마주하지 못한 감정들.

 

그것들은 모두

내가 풀어야 할 시험이고,

그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 

비로소 다음 세계로 향하는 

여권이 건네질지도 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
 

그리고, 

그 단어를 그렇게 열심히 외우고 있었던 걸 보면,

나는 아직도

그 배 위에 있는 것 같아요.

 

다만,

이제는 알아요.

 

과거를 이해하고 나서야

그 배에서 내릴 수 있다는 걸요.

그리고

미지의 세계에 대한 저의 열망이 

얼마나 큰 지도요.


 

엘리의 정원에서.

기억이라는 시험지를 품에 안고,

다음 챕터를 기다리는 항해 중의 나로부터.

망망대해 배